불협화음, 말러, 그리고 그 이후 - Part2
안녕하세요! 가우디오랩에서 음성 AI를 연구하고 있는 Ste(스테)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말러의 불협화음이 그의 감정을 담아내는 언어였음을 이야기했죠.
이번엔 그 언어가 음악사적으로 남긴 흔적과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말러의 음악, 이제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
2 말러
그 숙제를 풀어낸 작곡가들 중 한 명이 말러이다. 말러는 그의 교향곡에서 불협화음의 가능성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작곡가였다. 그가 말하길, ”교향곡은 세계와 같다. 모든 것을 껴안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의 음악에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우주의 질서와 혼란,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말러에게 불협화음은 단순한 음의 불일치가 아닌, 조화와 긴장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그의 교향곡에서 말러는 세상의 다양성을 하나로 융합하며, 청중이 새로운 철학적 사유에 이르게 한다. 교향곡 1번에서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면서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유년 시절을 반추하는듯이 협화와 불협화, 조화와 혼란을 동시에 펼쳐내고, 교향곡 2번에서는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삶의 무게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표현해낸다.
교향곡 3번은 존재의 계층을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 사랑의 메시지가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에서는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안에 사랑의 슬픔과 불안이 스며들어 있는 모습을 통해, 음악이 사랑과 상실,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담아내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 10번은 그의 예술적 탐구의 정점으로, 불협화음의 절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비록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말러는 이 작품에서 고통과 절망을 끌어안으며 불협화음으로 인간의 상처와 고통을 하나의 예술적 세계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2.1 A음으로 쓴 연애편지 :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은 그의 아내 알마 말러를 위해 헌정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로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선사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이 삶과 죽음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인용된 바 있다.
조성은 F Major로 느리고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비화성음의 컨트롤이 마치 슈만의 피아노 소품 ”트로이메라이”를 연상 시킨다. 조성도 같고 시작하는 음의 구성도 비슷하며, 더욱이 절정부분에서 강조되는 높은 A음의 사용이 비슷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트로이메라이”에서는 절정부분에서 높은 A음을 유지하면서 전반부에는 A Major 화음으로 후반부에서는 G Major 9th 화음으로 수식을 한다. 후반부의 화음에서 A음이 9음이 되므로 좀 더 긴장감이 증폭되고 애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셈이다.
Figure 4: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좌)와 10번 1악장(우)에서 발췌
말러 또한 이와 같은 구조를 취한다. 같은 높은 A음을 두고 전반부에서는 F Major 화음으로 수식하고, 후반부에서는 Figure 4에서 보듯이 BbmM7 화음, B∅7화음 그리고 이어서 F Major로 수식한다. 두 개의 화음에 걸쳐 F Major로 가는 동안 비화성음은 두 개가 사용된다. 2바이올린에서 사용된 A음로 가는 G#음과 D음으로 가는 C#음이다.
2.2 내 아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말러와 알마는 결혼을 하였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말러와 알마가 틀어지게 된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둘만이 아는 사실일테고 (때로는 그들도 모르기도 하지만) 몇몇 서로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들을 비춰 어렴풋이 짐작해볼 따름이다. 알마도 소싯적 작곡가를 꿈꾸었으나 말러와 결혼하면서 포기했다고 한다. 말러는 알마의 음악에 대해 평하기를 ” 그녀가 작곡한 음악은 역겨운 딜레탕티즘에 절어 있으며, 그녀의 머릿속에 든 것은 복종에 대한 공상과 지배에 대한 공상 사이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나태한 사고방식 뿐이다.”라고 한 바 있다. [1]
알마가 작곡한 가곡 몇 개를 유튜브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데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5 Lieder” 의 첫번째 곡 ”Die Stille Stadt”에서 첫부분에 D-C-Bb-A-G이라고 하행하는 선율에 이어, 피아노 반주로 D-C-B-A-G이라고 B음을 모듈레이션 하여 받거나, 감7화음에 이어 자유롭게 다른 조성으로 전조하는 등의 화성 구사 능력을 보았을 때, 상당히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낭만 후기에 있었던 부동 화성(floating harmony) 체계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재능을 말러도 몰랐을리 없다만 작곡을 계속 하기를 반대하고 악평을 쏟아낸 이유는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태에서 둘의 결혼 생활은 화목하지 못하였고, 요양을 떠난 있던 알마는 건축가였던 발터 그로피우스와 외도를 하게 된다. 그로피우스가 의도적으로 알마에게 보낼 편지를 말러에게 전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말러는 낙심하게 된다. 얼마나 충격에 빠졌는지 정신과 상담까지 받게 되는데 그 정신과 상담 의사가 이 시대의 오은영 박사이신 지그문트 프로이트 되시겠다. 물론 프로이트와의 상담 내용은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진다. 그런데 프로이트와의 상담은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는지 상담 받고 오는 길에 썼다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진다. [1]
... 당신을 사랑해! -라는 말은 내가 칭송하는 나의 힘,
내가 고통 속에서 얻어 낸 생명의 선율,
오 나를 사랑해 줘! -라는 말은 내가 아는 나의 현명함,
저 선율이 내게 울려 퍼지는 바탕이 되는 근음(root) ...
자신의 아내에 대해 좋은 말은 못하지만 그 애정 만큼은 누구보다 못지 않은 츤데레 남이었던 듯 싶다. 프로이트와 상담도 받았겠다, 아내에게 다시는 그로피우스와 만나지 않겠다 약속도 받았지만 둘의 관계는 좀처럼 다시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말러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이 될 10번 교향곡을 쓰고 있었고, 그 가운데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토로해낸다.
Figure 4의 오른쪽 악보에서 말러 교향곡 10번에 나타나는 강한 불협화음을 보여주고 있다. 5번 4악장의 절정 부분에 사용한 높은 A음을 기음으로 하여 A∅7 코드를 만들어내고, 이에 정면으로 불협을 일으키는 G#˚7 코드를 동시에 사용한다. 이와 함께 근음(root)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C#을 배치한다. 공교롭게도 G#과 C#은 알마를 향한 사랑의 절정부분을 노래하는데 사용하였던 비화성음이었다. 앞에서 사랑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표현하는데 기여한 두 비화성음이 이제는 화성음과 같이 울리면서 이전에 없던 통곡의 목소리를 내는 불협화음의 역할을 한다. 모짜르트처럼 화성음으로 절대 해결하지 않으며, 불협의 상태를 지속하며 엄청난 맥놀이들을 뿜어낸다. 마치 좀처럼 다시 가까워질 수 없었던 말러와 알마의 관계와 같이...
3 그리고, 그 이후
19세기 말 20세기 초, 말러뿐만 아니라 불협화음을 비롯한 새로운 화성을 음악에 전면적으로 사용한 작곡가들이 있었다. 러시아의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통해 타악기적 불협화음을 시도했으며, 헝가리의 바르톡은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에서 자신만의 민속적 멜로디와 리듬을 불협화적 화성 요소들과 융합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보였다. 이러한 실험들은 고전 및 낭만의 화성법을 따르던 러시아의 라흐마니노프나, 온음음계와 선법을 차용하여 멜랑콜리하고 달콤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프랑스의 드뷔시, 라벨 등과는 또 다른 색채를 띤다.
말러가 선보인 불협화음에 대한 실험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기반으로 한 후배 작곡가들에게 전해져, 현대음악에서 불협화음을 하나의 음재료로 받아들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말러를 계승한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 쇤베르크는 오랜 연구 끝에 12음 기법을 창안하여, 12음과 모든 음정을 고르게 사용하는 작곡 방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음악적 소재를 시리즈로 만든 작곡 기법은 나중에 불레즈, 슈톡하우젠 등을 통해 리듬, 아티큘레이션, 다이내믹 등 모든 요소를 시리즈로 구성하는 총렬주의로 발전한다.
3.1 펜데레츠키와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20세기 중반 무렵, 불협화음의 덩어리는 이제 그 자체로서 소재화되어 ‘음군’(tone cluster)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는다. 음군 안에서는 불협화음의 구성이 극에 달할 정도로 채워져 그를 이루는 개별적인 화성 요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덩어리가 하나의 음으로써 어떻게 사용될지가 관건이 된다. 이러한 음군을 불운과 고통의 극한 감정을 표현하는 소재로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가 있다. 이 작품은 24대의 바이올린, 10대의 비올라, 10대의 첼로, 8대의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대규모 현악 앙상블로, 각 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높은 음을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며 시작한다. 여기에는 고전적인 아르코와 피치카토뿐만 아니라 하모닉스와 콜 레뇨를 비롯하여 악기를 두드리는 방법 등의 다양한 현대적 주법이 총동원된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연주되는 끔찍한 소리들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의 참상을 알리는 데 적합했을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달콤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리 없다.

3.2 리게티와 Atmospheres
한편 같은 무렵, 헝가리의 작곡가 리게티는 시끄럽게만 들릴 수 있는 음군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 ”Atmospheres”에서는 공기 중을 떠도는 분자들의 모습을, ”Lux Aeterna”에서는 전통적으로 찬란한 태양으로 표현되었던 빛을 광자 단위로 자잘하게 요동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음군은 더 이상 진한 감정을 전달하는 불협화음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들리는 정보량이 없는 무덤덤한 소음과 같아진다. 이렇게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듯한 음군의 사용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꽃 속의 세포들을 상상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요즘말로 하자면 펜데레츠키는 F, 리게티는 심각하게 T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상을 영화 감독 스탠리 큐브릭도 받은 것일까?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큐브릭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장면에 리게티의 ”Atmospheres”와 ”Lux Aeterna”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지구 안에서는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고, 사랑과 증오가 뒤얽히지만, 조금만 지구 밖으로 나아가면 창백한 푸른 별과 움직이지 않는 태양만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Figure 6: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에서
글을 쓰는 내내 카페 뒤에서 한 여자와 남자가 싸우고 있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여자가 회사에 찾아가서 난리를 친모양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그냥 이 소리들도 그저 음군처럼 들려 웃플 따름이다. 가까이서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이리라. 내 일이면 처참하다만, 남의 일이라면 드라마보다 재밌는 일인 것이다. 시인 백석이 사랑 하던 판소리 ”아서라 세상사”의 한 구절로 장황한 글을 서둘러 마무리해본다.
”아서라 세상사 쓸데없다. 군불견(君不見) 동원도리(東園桃李) 편시춘(片時春) 창가 소부(娼家少婦)야 웃들 마소.”
References
[1] Jens Malte Fischer. Gustav Mahler. Yale University Press, 2011.
[2] Hermann LF Helmholtz. On the Sensations of Tone as a Physiological Basis for the Theory of Music.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3] Reinier Plompand Willem JM Levelt. “Tonal consonance and critical bandwidth”. In: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38(1965), pp. 548–560.